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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by 인스픽 2022. 3. 7.

장례식 운구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저렇게 언젠가는 죽을텐데.....

잘 죽는 방법이 있다. 아이러니한 말일수도 있지만, 그것은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될것 같다. 

죽음에 대한 글들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꼭 나쁜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죽음, 운구

혹시 돌아가신 분의 관을 운구運柩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때 여러분은 관 속에 누워 있는 분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분처럼 살다가 그분처럼 떠나겠다는 생각이었습니까. 아니면 이런 분의 삶은 절대로 본받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까? 언젠가 여러분의 생이 끝났을 때, 누군가가 여러분의 관을 운구하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때 그 운구위원들이 관 속에 누워 있는 여러분을 위해 무슨 생각을 해주기를 바라십니까?

 

* 산 사람의 옷이 의복이라 불리는 반면 죽은 시체를 위한 옷의 명칭은 수의다. 의복과 수의의 근본적인 차이는, 물론 옷의 재질도 다르지만, 주머니의 유무다. 산 사람의 의복엔 주머니가 있게 마련이나 시체의 수의엔 아예 주머니가 없다. 죽은 시체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살았을 때 억만금을 쌓아 두었다 해도 시체가 되는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소유가 아니다. 도리어 내가 남긴 재물로 인해 산 사람들 사이에 처절한 재산 다툼이 벌어진다.

 

* 카이사르는 죽기 전날 마르쿠스 제피루스의 초대를 받아 함께 식사를 했는데 어떤 죽음이 가장 좋겠느냐는 질문에 갑작스런 죽음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렇게 죽었다.

 

* 죽음은 지금 내가 하던 일을 내일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다.

죽음은 다른 사람이 내 책상 서랍을 여는 것이다. 누가 감히 내 책상 서랍을 함부로 열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죽으면 누군가가 열어 볼 것이다. 열쇠가 없으면 망치로 깨어서라도 열 것이다.

죽음은 아침에 출근한 집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다시는 귀가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식한다면,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죽음은 내가 오늘 퇴근한 회사로 내일 아침 다시 출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장 동료를 함부로 대하고 퇴근할 수는 없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따뜻한 말로 동료의 수고를 격려한 뒤에 사무실을 떠날 것이다.

 

* 사람이 죽을 땐 못다 이룬 업적이나 실적을 두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나는 그동안 많은 사람의 임종을 보았다. 그러나 "그때 내가 조금만 더 투자를 했더라면 몇 억을 더 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던 일이나, 정직해야 할 때 정직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살아있는 사람들은 태어난 날로 기념된다. 그러나 죽음과 동시에 출생일은 의미를 상실, 망각의 창고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대신 죽은 자는 그 이후부터 죽은 날로 기념된다.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출생일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웬만큼 나이 든 사람이라면 그분의 서거일을 모두 알고 있다. 왜 사람은 죽은 이후에 죽은 날로 기억, 기념되는가? 인간의 죽음은 퇴장인 동시에 새로운 등장이기 때문이다.

 

퇴장준비는 죽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행하는 것이다.

 

* 칙센트미하이교수에 의하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던 공통적인 이유는 바로 삶의 한시성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이었다고 한다. 옛날 수사들은 일부러 책상 위에 해골을 올려놓고 글을 썼다고 한다. 자신이 죽은 뒤에 읽혀도 한 점 부끄럼 없는 글을 쓰기위해 매 순간 죽음을 의식했던 것이다.사람은 누구나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억울한 것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항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음을 향해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없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이것은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인간은 모두 죽음 앞에 무력한 것이다.

서서히 다가오는, 혹은 갑자기 닥친 죽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 그래서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가장 반대되는, 가장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가장 삶다운 삶을 살고 인생의 말년에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 개구리 죽음

먼저 물이 담긴 비커에 개구리를 넣는다. 그리고 물의 온도를 서서히 높인다. 아주 느린 속도로 서서히 가열하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견딜 수 없는 온도에까지 이르렀는데도 개구리는 아무런 변화를 못 느낀다. 결국 개구리는 한 번 뛰어올라보지도 못한 채, 기분 좋게 잠을 자면서 죽어가게 된다.

변화에 대한 둔감증이 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 죽음

버나드 쇼의 묘비명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1856.7.26~1950.11.2 조지버나드 쇼 여기 잠들다.’→→죽음의 그 순간까지 무언가를 망설이다 주어진 생을 허비해 버렸다.’는 고백의 묘비명을 재치있는 입담으로 남긴 남긴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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