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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개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by 인스픽 2022. 2. 6.

20세기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경쟁이라는 치열한 세계에서 살았던 거 같다. 물론 지금도 치열하게 보이든 보이지 않든지 간에 경쟁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건 사실이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내 눈에 처음 들어온것은 학교 배지와 함께 금배지를 달고 다니는 몇 명의 선배들이었다. 그것이 뭔지 금세 알게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평균 90점 이상을 받은 학생들에게 금배지를 주었고, 85점 이상을 받으면 은배지를 주었었다. 학창 시절의 우정과 사랑 이런 것들로 나의 그 시절 추억이 아름답게 기억되기보다는 내 주변의 친구들과 무척이나 성적에 대한 경쟁을 하면서 지내온 거 같다. 특히 나랑 친한 친구일수록 나는 더 좋은 등수로 그 아이의 성적으로 매겨진 등수를 이기려고, 아니 지지 않으려고 했었고, 또한 그 자랑스러운 금배지를 한 번도 달지 않은 적이 없었다.

 

1남 3녀의 둘째로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난 나는 너무너무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었다. 나름 예체능쪽에 재능이 있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우리 집에서 피아노 학원을 보낼 형편은 되지 않았기에, 단 한 번도 피아노 학원을 보내달라고 말 한마디 꺼낸 적이 없었다. 아마 부모님은 내가 피아노를 그렇게 배우고 싶어 했다고는 알지를 못하셨다.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것뿐 아니라, 나는 내가 어린 나이였는데도 단 한 번도 뭐가 먹고 싶다고 말씀드려본 적도 없었으니까. 난 그런 애였다. 고아도 아니면서......

 

중학교 3학년 때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을해서 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바로 위의 언니가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실업계 고등학교를 보내셨다. 중3인 나는 그때 제일 열심히 공부를 했었던 거 같다. 언니와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해가며 결국 전교 1등까지 해냈다. 그러니까 인문계 고등학교를 안 보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또한 고등학교때 기억이 나는 게 있는데, 같은 반에 이름도 이쁘고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공부도 너무 잘하는 반 친구가 있었는데... 난 집도 가난하고 모든 게 그 애보다 떨어지는 것 같고 어리고 부러운 마음에 그 친구를 속으로 엄청 미워했었다.

 

그렇게 그렇게 대학교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경쟁에 치여서 산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었고,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 날마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난 지쳐가고 있었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겠다. <아마데우스>란 영화가 나왔을때(비디오로 빌려봄), 난 소름이 끼치도록 이 영화에 스며들었다. 바로 살리에리 때문이었다. 그의 실감 나는 연기력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나내 거울 속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살리에리는 오스트리아 출신 천재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대음악가였다. 하지만 그 의 재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불세출의 천재였던 모차르트를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었고 결국 살리에리는 천재를 초월할 수 없는 수재, 영원한 이인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1인자를 질투, 시기하는 이인자의 심리를 가리켜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말이 붙었다.

 

나이가 들면서 '물이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란 말을 누가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네가 될 수 없고, 너도 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삶을 허비하는 것만은 참기가 어렵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도 많고, 즐거운 것도 많고, 누릴 것들도 많다. 이겨야 산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바보같이 내 짧은 삶을 무의미하게 소진해버리고 싶지는 않다.

라이벌이 있는 삶, 어떤 친구들은 그 삶이 더 다이내믹하고 긴장된다고 즐기기도 하는 것 같지만, 경쟁만큼 세상에 피곤한 일이 없다

생태학 용어에 니치 niche' 라는 게 있다.

생명체들도 지나친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니치를 찾고, 그렇게 해서 피곤한 라이벌 관계를 줄인다

 

리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지대한 반면, 정작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의외로 관심이 없다. 당신 안에 환상을 심어놓는 자존심이란 괴물이, 당신을 근본적으로 지탱해주는 자존감보다 더 중요한가?

 

자존심 운운하는 사람 치고 자존감 높은 사람 본 적 없다.

오히려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잘 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과 자존심, 둘의 차이를 혼동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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